세찬 비바람도 승리를 향한 집념과 남북이 하나 된 뜨거운 응원 열기를 꺾지는 못했다. 아시아 여자 축구의 정상을 가리는 AWCL 준결승 현장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진 역동적인 소통의 장이었다.
수원종합운동장의 밤은 거친 숨소리와 빗소리로 가득 찼다. 수원FC 위민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이하 내고향)이 맞붙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전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시간당 10mm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졌지만, 스탠드를 가득 메운 5,700여 명의 관중은 자리를 뜨지 않고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현장의 열기를 더했다.
폭우 속 5,700명의 열기, 승패를 넘어선 '공동 응원'의 기적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수원FC 선수들의 날카로운 슈팅이 이어졌으나, 번번이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오거나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이때마다 관중석에서는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특히 민간단체들이 주축이 된 2,000여 명의 남북공동응원단은 시종일관 열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이들은 치어리더의 리드에 따라 ‘내고향’을 연호하면서도, 수원FC의 득점 찬스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성숙한 팬덤 문화를 선보였다.
수원FC 서포터즈 역시 태극기를 내걸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응원전을 펼쳤다. 국가 대항전은 아니었지만, 남과 북의 팀이 한 그라운드에서 격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장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일부 관중의 야유가 섞이기도 했으나, 대다수 팬은 비바람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양 팀 선수 모두에게 격려의 시선을 보냈다.
96세 어르신부터 탈북 가족까지, 마음으로 뛴 90분
이번 경기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관중석을 채운 이들의 면면에서 드러난다. 젊은 축구 팬들 사이로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과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2016년 탈북해 화성에 정착한 김모 씨 가족의 모습은 뭉클함을 자아냈다. 평양 출신은 아니지만 북한 팀을 직접 보고 싶어 경기장을 찾았다는 김 씨는 내고향 팀이 득점하자 "기분이 좋더라고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현장에는 96세의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 씨도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쇠약한 몸을 이끌고 빗속 응원에 동참한 그는 하프타임 인터뷰를 통해 "통일된 조국에서 이런 경기가 열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는 소회를 밝히며 현장의 울림을 더했다. 비록 경기는 내고향의 승리로 끝났고, 북한 선수단이 응원단에게 별도의 인사 없이 퇴장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팬들의 마음은 여전히 따뜻했다.
축구라는 공통분모 아래 남과 북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응원을 주고받은 이번 경기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가치를 남겼다. 승패의 결과보다 빛났던 것은 비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팬들의 열정과 화합의 목소리였다. 이번 AWCL 무대를 계기로 스포츠가 가진 소통의 힘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드라마를 써 내려갈지, 다음 행보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더욱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