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염혜란이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내 이름은'에서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모성애 연기를 선보인다. 1998년 제주를 배경으로, 아픈 기억을 가진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염혜란은 이 작품이 단순한 선동이 아닌 문학적 재미를 갖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영화 '내 이름은'은 1998년 제주도를 배경으로, '영옥'이라는 이름을 싫어하는 18세 소년과 그를 키우는 엄마 정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4·3사건 공모전에서 시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제주 4·3사건을 정면으로 다룰 것으로 예상한 일부 관객에게는 예상 밖의 전개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주인공 정순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에게는 바로 이 지점이 출연을 결심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배우로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4·3 사건 소재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 영화 '내 이름은', 4·3 사건을 넘어선 보편적 사랑 이야기
염혜란은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문학적으로든, 영화적으로든 재미가 없으면 그냥 선동하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며 "이 영화는 선동하는 느낌 없이 문학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이어서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내 이름은'은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인물의 내면과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나쁜 기억을 묻고 살던 정순은 과거와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4·3 사건의 아픔이 드러난다. 염혜란은 "배우는 이야기를 직접 쓰지 않은 이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존재"라며 "저라는 도구를 통해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 이야기가 현재에도 필요하다는 생각 또한 염혜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4·3 사건이) 교과서에 명확히 실려 있고 정의가 내려진 사건인데도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떤 색깔처럼 비쳤다"며 "그런 지점에서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염혜란은 이 작품을 '사랑에 관한 영화'로 규정하며, 지난 2월 제76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들었던 현지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내 이름은'은 베를린 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어 처음 공개되었는데, 당시 관객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영화를 받아들였고, 이는 염혜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는 "인류 보편적인 얘기로 받아들여 주시는 게 좋았다"며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긴 하지만, 전 인류적인 이야기로 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염혜란의 연기 철학, '국민 엄마' 이미지를 넘어선 욕심
작품을 준비하며 염혜란은 4·3 사건을 다룬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독립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 등을 참고했다. 또한, 영화에서 진혼을 비는 듯한 춤사위를 선보이고 고(故) 김민기의 '친구'를 부르기 위해 춤과 노래도 준비했다. 그는 "배우가 힘들수록 관객이 즐겁다는 인식이 있다"며 "몸짓, 사위 같은 것을 선보이는데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내 이름은'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에 대해 염혜란은 '거장'이라고 칭하며, '소년들'(2023)에 이어 두 번째로 정 감독과 호흡을 맞춘 소감을 밝혔다. 그는 "감독님은 생각이 크고 거리낌이 없다"며 "오로지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시는데, 그 일념이 어디서 나오는지 대단하다"고 존경심을 표했다.
영화 속에서 염혜란이 맡은 정순은 제주도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엄마다. 이러한 설정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2025)에서 그가 맡았던 광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에 대해 염혜란은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에 관해 "배우로서 그렇게 상징화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엄마'라고 하면 나쁜 엄마를 하지 못할 것 같다. 배우 염혜란은 욕심이 많아서 지독히 이기적인 엄마도 하고 싶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는 최근 '폭싹 속았수다'를 비롯해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2025), '매드 댄스 오피스'(2026)까지 연이어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 대해 '염혜란의 전성기'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그는 "매번 '전성기가 아니라고 하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지금이 전성기가 아니면 무엇이 전성기겠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좋은 작품들에 출연할 때 전성기임을, 큰 복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드라마 '도깨비'(2016) 속 조연으로 얼굴을 알린 뒤 영화 주연까지 차근차근 올라온 그는 전형성에서 벗어난 연기를 선보이는 것이 앞으로의 고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물로 다가가는 노력은 기본이고 사람들 예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그런 고민을 더 하게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